티스토리 뷰

 

죽을 만큼 열심히 사는데… 왜 공허할까?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공허하다. 기록하고, 인증하고, 공유하지만 정작 는 없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가 아니라 '보이기 위해' 살아간다. 그 병적인 증명 욕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1. '보여주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불안한 시대

현대인은 무엇을 하든 타인의 시선을 먼저 계산한다. 휴가를 가면 풍경보다 카메라 앵글을 신경 쓴다. 책 읽기보다 책 읽는 모습을 더 열심히 꾸민다. 이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존재의 증명을 외부에 맡기는 심리 구조다. 보여줘야 살아 있는 것 같고, 댓글의 반응이 있어야 의미가 부여된다. 하지만 그 방식은 위험하다. 타인의 반응은 통제할 수 없고, 기준은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결국 당신은 불안정한 외부에 존재의 뿌리를 맡기고 있는 셈이다.

 

 

2.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병이 되는 순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인간은 원래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욕구가 존재의 전부가 되는 순간, 삶은 점점 왜곡된다. 늘 누군가와 비교하게 되고, 뒤처질까 봐 조급해진다.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해 보이기위해 애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보다, 보이기에 적절한 감정만 골라 연기하게 된다. 그렇게 사람은 점점 타인의 기대에 최적화된 자아를 만들어낸다. 그러는 사이 자신의 진짜 감정과 욕망은 희미해진다. 결국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만든 가짜 나속에 진짜 나는 점점 사라지고 만다.

 

 

3. ‘보이는 나가 아니라 살아가는 나

이제는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보여주기 위해 살고 있는가, 아니면 진짜 나로 살고 있는가?” 진짜 삶은 사진에 찍히는 순간보다, 카메라 밖에서 조용히 흐르는 시간 속에 있다.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혼자 앉아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람과의 깊은 대화, 그리고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속에 담겨 있다. 결국 인생은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라, 살아낸 순간의 깊이로 완성된다.

 

 

4. 마치며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끊임없이 타인에게 나를 증명하는 것으로 내 존재가 확인된다면 나는 이미 타인의 식민지다." 인정 욕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그러나 그것이 존재의 유일한 기준이 되는 순간 당신은 타인의 식민지가 된다. 보여주기보다 살아가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조금 덜 반응받고, 덜 증명하더라도, 내가 중심이 된 삶은 조용하지만 훨씬 깊고 단단하다. 결국 타인의 눈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살아낸 하루가 진짜 인생을 만든다.

 

https://contents.premium.naver.com/hontents/bookolrim

 

북올림의 미공개 노트 :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북올림의 미공개 노트'는 단순한 독서 리뷰를 넘어, 책 속 숨은 의미를 해부하고 이를 현실과 연결하는 프리미엄 콘텐츠입니다. 활자로 남겨진 메시지를 날카롭게 분석하며, 삶의 장면 속에서

contents.premium.naver.com